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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의 환상과 실업의 현실을 그린 대학은 나왔지만

by chaechae100 202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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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나왔지만 포스터
대학은 나왔지만 포스터

1929년에 제작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대학은 나왔지만(大学は出たけれど / I Graduated, But...)은 무성영화 시절 일본 청년층의 현실을 절묘하게 포착한 사회적 드라마다. 이 영화는 당시 급격한 경제 침체 속에서 대학 졸업이라는 상징적 성공이 실질적인 삶의 보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던 시대의 현실을 담고 있다. 제목 자체가 이미 풍자이자 현실고백인 이 작품은 오즈 감독 초기작 중에서도 사회적 메시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문제의식 강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줄거리 요약 

주인공는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남성이다. 당시로서는 극소수의 특권층만이 가능한 대학 졸업자이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인공은 결혼도 하고 안정된 가정도 갖는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태다.

그는 겉으로는 곧 일자리를 구할 것이라며 허세를 부리지만 실제로는 구직 활동에서 번번이 좌절을 겪는다. 그러다 결국 친구의 소개로 비루한 회사에 겨우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 생활은 상상과 달리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이다. 반복적인 업무와 상사의 억압,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그는 깊은 회의에 빠지고 이내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아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몰래 바느질을 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은 차츰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온다. 그제야 주인공은 이유 없이 회사를 그만둘 만큼의 여유는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결국 그는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 고개를 숙이고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은 청춘의 이상이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을 조용히 보여준다.

학력의 환상과 실업의 현실

대학은 나왔지만이 제작된 1929년은 일본도 세계 대공황의 여파를 심각하게 겪던 시기였다. 대학 졸업장은 곧 성공이라는 믿음은 붕괴되고 있었고 특히 젊은 청년층은 배운 만큼 일자리가 없다는 모순을 온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이 영화는 그 모순을 웃음 뒤의 씁쓸함으로 그려낸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이다. 오즈는 이 작품을 통해 학벌, 취업, 가정이라는 당시 중산층의 삶의 기둥이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영화의 제목부터가 이미 풍자다. 대학은 나왔지만...이라는 말은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 여겨지던 학벌이 무용지물이 된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이 겪는 무기력함, 자격지심, 현실에 대한 분노는 당시 수많은 청년들의 목소리였다.

또한 이 영화는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가부장적 위계도 조명한다. 주인공은 외적으로는 가장의 위엄을 유지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아내는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림을 꾸려가고 그런 그녀와 대비되는 남편의 나약한 모습은 전통적 남성상에 대한 조용한 도전으로도 읽힌다.

오즈 야스지로의 연출 특징 

대학은 나왔지만은 오즈 감독의 대표적인 무성영화 초기작으로 아직 다다미 샷이나 정적 화면 같은 오즈만의 고유 스타일이 완성되기 전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이미 오즈 특유의 감정 절제와 리듬 조절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일자리를 그만두고 돌아온 장면은 별다른 설명이나 내레이션 없이도 분위기만으로 감정이 전해진다. 배경 음악이 없는 무성영화라는 제약 속에서도 인물의 눈빛과 움직임만으로 심리를 표현한 오즈의 연출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방식이었다.

또한 이 영화는 도시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당시 일본 영화는 대부분 시골이나 역사극이 중심이었지만 오즈는 이 작품에서 도시 빈곤, 교외 주택, 신혼부부의 보금자리, 철도 통근 장면 등 도시인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이는 현대화와 전통 사이의 충돌,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한 오즈의 시도였다.

오즈의 미학은 감정을 소리치지 않는다. 슬픔도 분노도 영화 속 인물들은 그저 참는다. 그리고 그 참음은 관객의 가슴속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대학은 나왔지만은 이러한 오즈적 감정 표현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난 작품 중 하나다.

오늘날에도 여전한 질문

대학은 나왔지만은 단지 1929년 일본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고전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 학벌과 취업, 가족과 생존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여전히 계속되는 이야기다. 오즈 야스지로는 이 영화에서 거대한 정치적 주제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대신 한 가난한 신혼부부의 작은 일상을 통해 현실의 모순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대학은 나왔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말 뒤에 숨겨진 감정과 현실을 90년 전부터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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