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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흐름을 따라 정서가 쌓이는 일본 고전 영화의 서사 구조 정리

by chaechae100 2025.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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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의 서사를 나타내는 전통극 노
일본 전통의 서사를 나타내는 전통극 노

일본 고전 영화는 서구적 서사 구조와는 명백히 다른 리듬과 구성을 바탕으로 정서의 층위를 쌓아가는 독자적인 서사 체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제작된 작품들은 이야기 전개의 속도, 시간 감각, 인물 간 거리감, 정서의 표현 방식 등에서 기존 헐리우드의 인과 중심 구조와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일본 고전 영화의 서사는 명확한 기승전결이나 갈등과 해소의 공식을 따르기보다는 일상성과 감정의 누적, 사소한 사건의 중첩을 통해 흐름을 만들어간다. 사건보다 정서가 앞서고 갈등보다 관계의 여백이 강조되며 클라이맥스의 고조보다는 정적인 감정의 응시가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일본 전통 예술에서 비롯된 감각, 특히 마(間)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시간과 공간, 감정 사이의 여백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일본 고전 영화의 내러티브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의 흐름에 몰입하기보다는 정서의 표면을 따라 천천히 침잠하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변화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감지되며 영화는 그 미묘한 감정의 진폭을 조용히 포착해낸다.

일상적 흐름을 따라 정서가 쌓이는 일본 고전 영화의 내러티브 감각

일본 고전 영화에서 서사는 대부분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명확한 방향성을 갖기보다는 흐르듯 이어지고 멈추며 그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인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는 일상의 반복이 곧 서사다. 한 가족의 저녁 식사, 부모와 자식 간의 짧은 대화, 자잘한 준비물 챙기기와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전체 영화의 흐름을 이끌며, 그 반복 속에서 관계의 균열이나 감정의 이탈이 서서히 드러난다. 미조구치 겐지의 작품들 역시 하나의 사건에 의한 급격한 전개보다 인물의 삶에 누적되는 사회적 억압과 현실의 무게를 시간의 감각 안에서 전개한다. 이러한 서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의 결말을 예측하기보다 현재의 감정과 분위기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며 사건이 아닌 감정의 기류를 따라가는 구조로 변모한다. 특히 마의 개념은 장면과 장면 사이, 대사와 대사 사이에 의도된 공백을 만들어내며 그 여백 속에서 감정은 조용히 확대된다. 인물의 침묵, 정적인 프레임, 변화 없는 공간은 이러한 서사의 특징을 구체화하는 요소다. 영화는 인과 구조에 기반한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을 보여주기보다는 정서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성해낸다. 이처럼 일본 고전 영화의 서사는 사건 중심이 아니라 감정 중심이며 관객은 인물의 내면이 확산되는 방식으로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보는 이에게 정서적 이입이 아닌 정서적 동조를 요구하는 영화 문법으로 기능하며 서사보다 감각이 우선하는 내러티브 구조를 만든다.

시간의 확장과 정지 속에서 감정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방식

서양 영화가 시간의 압축을 통해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면 일본 고전 영화는 반대로 시간의 확장을 통해 감정의 층위를 구성한다. 장면은 느리게 전환되고 사건 간의 연결은 최소화되며 동일한 공간과 동선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단조로움을 위한 반복이 아니라 감정의 누적을 위한 구조적 장치다. 오즈 야스지로는 비어 있는 공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인물의 부재를 통해 정서의 여운을 시각화했다. 미조구치 겐지의 롱테이크는 단일한 시점으로 시간을 밀어내며 그 안에서 인물의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을 장기적으로 담아낸다. 이 방식은 단순한 감정 묘사를 넘어 시간 자체를 감정의 밀도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서사 구조는 이처럼 움직이지 않는 시간, 흐르지만 고정된 공간을 통해 감정의 진행을 서술한다. 감정은 직접적인 사건보다 기다림과 침묵, 주고받지 않는 시선 속에서 확장되고 영화는 그것을 장면 간 간격과 시선의 고정으로 구현한다. 관객은 사건의 결과보다 인물의 감정선 변화에 더 깊이 주목하게 되고 영화는 이러한 감정의 축적을 통해 서사를 성립시킨다. 일본 고전 영화의 시간은 흘러가되 중첩되며 과거와 현재, 말과 침묵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관객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시간의 감각 안에서 인물의 존재를 느끼는 방식으로 영화와 관계를 맺는다. 이 시간의 구조는 영화의 전체적 리듬을 정서적 중심에 두도록 만들며 인물의 행위보다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서사 미학으로 이어진다.

결말보다 여운에 집중하는 정서적 완결 방식

일본 고전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서도 서사를 완전히 닫지 않는다. 인물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지 않고 사건은 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영화는 대단원보다는 일상의 연장처럼 끝난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단순한 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음을 전제로 한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는 여성 인물의 선택이 불확실한 미래로 열려 있고 오즈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대화 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보여준다. 결말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감정의 정체를 드러내는 지점이며 영화는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는 서사가 감정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관객은 이야기의 끝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이 멈춘 시점에서 자신의 감정을 반추하게 된다. 일본 고전 영화는 서사의 닫힘보다 정서의 지속을 택하며 이를 통해 영화 밖의 시간까지 감정의 여운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서사를 통해 감정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감정을 서사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영화는 감정의 끝맺음보다 감정의 여백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여백 속에서 인물과 관객은 함께 멈춰 선다. 결국 일본 고전 영화의 서사 구조는 사건 중심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배제하고 일상적 흐름, 시간의 축적, 감정의 여운을 중심으로 구축되며 그것이야말로 이들 영화가 가진 고유의 미학적 체계를 이루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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