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맛(秋刀魚の味, An Autumn Afternoon)은 일본 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유작으로 1962년 개봉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재평가되고 있는 고전 명작입니다. 현대화로 급변하는 전후 일본 사회에서 가족의 해체, 세대 간의 단절, 인간 관계의 씁쓸함을 절제된 연출과 조용한 감정선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가을처럼 쓸쓸하고 고요한 삶의 맛을 전하는 오즈 영화의 정수입니다.
결혼을 권하는 아버지, 그러나 남는 것은 공허함
이야기는 중년의 샐러리맨 히라야마(류 치슈 분)와 그의 딸 미치코(이와시타 시마 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히라야마는 전직 해군 장교로 지금은 회사에 다니며 아들과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내를 여윈 뒤 그는 딸 미치코와 친구처럼 살아가며 어느 정도의 안락함과 안정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래전 은사였던 사지 선생(오카다 에이지 분)을 우연히 만나면서 히라야마는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사지 선생은 딸과 함께 살아가지만 생활력 없는 그 딸은 평생 결혼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히라야마는 딸의 인생을 빼앗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에 사로잡히고 딸 미치코의 결혼을 추진하게 됩니다.
미치코는 결혼에 큰 의욕이 없었고 오히려 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마지못해 결혼을 수락합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히라야마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씁쓸한 웃음을 짓고 홀로 집으로 돌아와 텅 빈 식탁 앞에서 조용히 술을 마십니다.
오즈의 유작이 된 영화, 침묵과 여백의 미학
꽁치의 맛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마지막 영화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끝으로 1963년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 오즈의 영화 세계는 일본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에서도 새롭게 재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오즈는 이 영화에서도 특유의 고정된 낮은 앵글(다다미 샷), 절제된 카메라 움직임, 침묵이 많은 대사, 그리고 일상적인 식사나 대화 장면을 통해 삶의 공허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포착합니다.
특히 영화의 색감은 그전의 흑백 오즈 영화와 달리 컬러로 촬영되었지만 컬러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는 훨씬 더 무채색에 가까운 정서를 전달합니다. 밝은 빨간색 유니폼, 맥주잔의 금빛, 신사복의 회색빛 등, 오즈는 사소한 색채마저도 등장인물의 정서 상태와 세대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암시합니다.
전후 일본 변화하는 가족 그리고 남겨진 이들
이 영화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전후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시대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부모와 자식이 한 울타리에서 함께 늙어갔지만 경제 성장과 도시화로 인해 자녀는 독립하고 부모는 혼자 남는 사회 구조가 자리잡아갑니다.
히라야마는 딸의 결혼을 도우면서도 자신이 어떤 공허함에 빠지게 될지를 충분히 예감하고 있습니다. 그는 좋은 아버지이고 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맞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딸이 떠나간 후 그는 더 이상 할 말도 기대할 가족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의 감정적 단절 그리고 누구나 결국은 혼자가 되는 삶의 구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오즈는 그것을 연민이나 비판이 아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 섞인 시선으로 묘사합니다.
인생은 꽁치 같다, 쓸쓸하지만 잊히지 않는 맛
꽁치의 맛은 일본 영화사에서 단지 유작이라는 의미만이 아닌 가족과 인생, 시간의 흐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남긴 마지막 성찰의 기록입니다. 히라야마가 느끼는 외로움은 단지 아버지의 외로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할 인생의 뒷맛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교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보여주고 관객 스스로 감정의 결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가족, 나이듦, 인간 관계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가을 저녁 꽁치를 구우며 생각에 잠기는 듯한 기분처럼 꽁치의 맛은 그렇게 담백하지만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