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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린 영화 흐트러지다

by chaechae100 202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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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지다 포스터
흐트러지다 포스터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1964년 작품 흐트러지다는 전후 일본 영화사의 감정 서사 중에서도 가장 고요하면서도 깊게 흔들리는 작품 중 하나다. 여성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선, 전통적인 가족 구조, 금기와 감정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심리적 파열을 다룬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닌 시대의 초상이며 억눌린 감정의 기록이다. 주연 다카미네 히데코는 이 영화에서 한 여성으로서의 존엄과 붕괴 그리고 복합적인 감정의 절정을 보여주며 나루세의 페르소나로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흐트러지다는 외적으로는 잔잔하지만 내면에서는 격렬히 뒤틀리는 인간 감정의 교차점을 정제된 연출로 풀어낸 수작이다.

미망인의 흔들리는 마음, 그날 모든 것이 흐트러졌다

흐트러지다는 오래된 가족 식료품점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레이코는 전쟁 중 전사한 남편의 유족으로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아가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이 없는 지 18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시댁의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책임감 있고 성실한 레이코는 시댁에서 신뢰받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더 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점점 대형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가게는 위기를 맞이하고 시댁 식구들은 사업 확장을 이유로 가게를 정리하려 한다. 레이코의 존재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애매해진다. 이 와중에 시동생인 고이치가 그녀에게 연정을 드러낸다. 그는 레이코보다 열한 살 어린 청년으로 과거에도 호감을 품어왔지만 당시에는 표현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레이코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레이코는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며느리로서의 책임감, 사회적 도덕, 연상의 여성으로서의 위치, 무엇보다 이미 스스로 단단하게 쌓아올린 윤리의 벽이 그녀를 붙잡고 있다. 결국 그녀는 가게를 떠나기 위해 열차에 오르고 고이치는 그 뒤를 따라온다. 두 사람은 역에서 재회하지만 레이코는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다시 혼자가 된다. 영화는 그녀가 열차에 오른 후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나며 사랑과 도덕, 책임 사이에서 균열이 난 그녀의 내면을 담담하게 비춘다. 이 영화에서 흐트러짐은 단지 감정의 격랑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감정을 억누르고 지켜왔던 질서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감정의 지층 붕괴다.

정적의 미학, 감정은 목소리 없이 움직인다

나루세 미키오의 연출은 절제의 미학 그 자체다. 흐트러지다에서도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감정을 견디는 인물의 내면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포착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카메라는 고요하고 낮은 앵글로 인물을 응시하며 인물 사이의 거리, 프레임 밖의 여백, 그리고 시선의 교차만으로 감정의 밀도를 조절한다. 레이코가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숟가락을 내려놓거나 조용히 옷을 개는 동작만으로 관객은 그녀의 불안과 상실을 느낄 수 있다. 시동생 고이치가 그녀에게 감정을 고백할 때도 카메라는 극적인 클로즈업을 피하고 둘 사이의 간격을 화면에 남긴다. 그 간격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넘을 수 없는 심리적 장벽이다. 나루세는 바로 그 틈을 통해 사랑이란 말보다 더 큰 침묵 속에서 태어나며 종종 도달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레이코가 열차 창밖으로 고이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녀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진 지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녀가 다시 질서를 되찾으려는 고통스러운 선택임을 보여준다. 감정은 울부짖지 않고 움직임도 느리지만 그 안의 진동은 관객의 가슴을 강하게 때린다.

누구도 죄인은 아니나 모두가 어긋난다

흐트러지다는 어느 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레이코는 헌신적이지만 완벽하지 않고 고이치는 순수하지만 이기적이며 시댁 식구들은 냉정하지만 그들 나름의 현실 논리를 따른다. 이 영화는 선악의 구도로 전개되지 않는다. 누구도 전적으로 옳지 않으며 누구도 철저하게 잘못되지 않았다. 나루세는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감정의 층위를 선명하게 보여주며 모든 인물이 각자의 입장에서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그린다. 레이코는 고이치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윤리를 지킨다. 그러나 그 선택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그녀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한다. 고이치 역시 나름의 진심을 내보였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무모한 결정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영화는 그들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감정의 진실성과 사회적 제약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준다. 흐트러진다는 제목처럼 인물들은 무너지고 흩어지며 이전과는 다른 감정 상태로 이행한다. 하지만 나루세는 그 파괴를 폭력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 피할 수 없는 성장의 고통처럼 묘사한다. 그 안에는 연민이 있고 체념이 있으며 잠재적인 회복의 가능성도 희미하게 존재한다.

흐트러지다는 감정이 폭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감정이 축적되고 눌려 있다가 아주 작은 틈에서 새어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는 영화다. 레이코가 끝내 열차에 올라 외면과 동시에 수용의 태도를 선택하는 결말은 현대인이 겪는 감정의 충돌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는 시대를 넘어서 여성의 위치, 관계의 불균형, 사랑의 책임에 대해 말한다. 나루세는 강하게 말하지 않지만 그의 영화는 조용히 오래 남는다. 흐트러지다는 고요한 파국을 그린 작품이며 감정의 질서를 지키려 했던 한 여자의 아름답고도 슬픈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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