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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의 고통 속 새겨진 감정의 잔류 영화 부운

by chaechae100 2025.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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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운 포스터
부운 포스터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1953년 작품 부운(浮雲)은 일본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하야시 후미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폐허가 된 시대의 감정과 관계를 응축한 수작이다. 이 영화는 전후 일본 여성의 삶과 감정 그리고 고통스러운 사랑의 구조를 정면에서 그려낸다. 주인공 유키코는 전쟁 중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후지와라라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고 종전 후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에 대한 감정을 떨치지 못한 채 재회와 단절을 반복한다. 유키코는 그와의 관계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후지와라는 책임감 없이 그녀를 밀어내면서도 다시 끌어당긴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가 가진 집착과 단념, 희망과 절망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유키코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비인격화되고 소모적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루세는 유키코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점 무너져가는 모습을 통해 한 여성의 존재가 어떻게 시대와 구조 속에서 휘말리는지를 정적으로 묘사한다. 사랑은 구조 안에서 왜곡되고 감정은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랑이 중심인 동시에 사랑이 부재하는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유키코는 끝내 후지와라를 놓지 못하고 후지와라는 끝내 그녀를 붙잡지 않는다. 이들의 관계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반복되고 소멸한다. 부운은 그 반복 속에서 존재하는 감정의 파편을 기록하며 연애라는 개인적 감정이 사회와 구조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응시한다. 오직 감정만이 남아 있는 잔해 위에서 유키코는 끝까지 무너지며 살아낸다.

일본 여성의 고통 속 새겨진 감정의 잔류

유키코는 전후 일본 여성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인물이다. 그녀는 전쟁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피어난 사랑을 유일한 삶의 지표처럼 붙잡는다. 후지와라와의 관계는 애초부터 평등하지 않았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도 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현실이 돌아왔을 때 그 관계는 더 이상 공고하지 않다. 후지와라는 일상으로 복귀하고 가정을 유지하면서도 유키코를 완전히 버리지도 않는다. 그들의 재회는 반가움이 아니라 상처의 재확인이고 유키코는 반복적으로 후지와라를 따라가지만 갈수록 그에게서 멀어진다. 그녀는 일자리를 잃고 집도 없이 떠돌고 감정적으로도 피폐해진다. 후지와라는 그런 그녀에게 냉담하게 대하면서도 일정한 감정의 선을 넘지 않으며 그녀를 계속 끌어당긴다. 이 관계는 소유도 아니고 동반도 아니며 오직 일방적인 의존과 이기적인 유지만이 존재한다. 유키코는 후지와라에게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 전쟁 중이던 과거의 기억이자 그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감정의 편린이다. 나루세는 유키코가 점차 감정의 파탄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절제된 연출로 그려낸다. 그녀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표정이 사라지고 몸이 무거워진다. 그 침묵은 내면의 절망을 가득 품고 있으며 영화의 톤도 그녀의 감정처럼 어두워지고 무겁게 내려앉는다. 부운에서 유키코는 존재하는 동시에 사라지고 있는 인물이며 그녀가 감정을 유지할수록 그녀 자신은 조금씩 파괴된다. 그 파괴는 조용하고 그래서 더욱 처절하게 스며든다.

무책임한 남성과 허무한 사랑이 만든 고통의 구조

후지와라는 일본 사회의 전형적인 무책임한 남성상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는 유키코와의 관계에서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주체적이지 않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끊임없이 그녀를 밀어내고 필요할 때만 다시 끌어당긴다. 그는 가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유키코를 희생시키며 동시에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감정을 일으키는 인물이 아니라 감정을 파괴하는 인물이다. 유키코가 그를 쫓는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이 그녀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루세는 후지와라를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지극히 평범한 감정에 무딘 남성으로 묘사된다. 그런 평범함 속에 있는 무심함과 무책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영화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후지와라는 한 번도 유키코에게 삶을 보장하지 않고 감정만을 허락했다가 철회한다. 그 감정은 불완전하고 애매하며 결국 유키코를 파괴하는 근원이 된다. 나루세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된 구조적 착취를 조명한다. 후지와라의 존재는 그녀를 계속해서 무너뜨리는 반복적 장치이며 그가 가까이 올수록 그녀는 더 불안정해진다. 부운은 남녀 간의 감정이 얼마나 쉽게 권력의 형태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서 벌어지는 감정의 소모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유키코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도 후지와라를 그리워하고 후지와라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그녀를 떠난다. 이 비대칭은 감정이 아닌 구조에서 비롯된 고통이다.

사랑도 삶도 도달하지 못한 감정의 종착지

부운은 어떤 구원도 제시하지 않는 영화다. 유키코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갖지 않으려 하면서도 감정을 놓지 못한다. 그녀는 후지와라에게 버림받고도 그와 함께 있던 시간을 놓지 않으며 그 감정의 흔적에 의지해 살아간다. 그러나 그 감정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병에 걸려 쇠약해지고 후지와라에게조차 버려진 채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그녀의 죽음을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죽음이 스며들고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자 유일한 해방처럼 다가온다. 후지와라는 그녀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으며 그녀의 삶에 끝까지 관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감정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나루세는 이 영화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사랑은 완성되지 않고 관계는 정리되지 않는다. 유키코는 죽음으로 모든 감정을 안고 사라지고 후지와라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 대조는 영화의 핵심이자 시대의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감정적 격차다. 부운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감정의 결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비극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전후 일본의 현실을 살아간 여성의 감정사를 기록한 작품이며 그 감정은 끝내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하고 공중에 머문다. 삶도 사랑도 어딘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사라진 유키코의 궤적은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동시에 절절한 것인지를 끝없이 환기시킨다. 영화는 감정을 다 쓰고 남은 자리에 남겨진 공허함을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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